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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뒷 목재 고갯길에서 땔감 나무 장만 중인 뒷집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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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뒷 목재 고갯길에서 땔감 나무 장만 중인 뒷집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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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뒷 목재 고갯길에서 땔감 나무 장만 중인 뒷집 아주머니^^

  아주머니 빵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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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뒷 목재 고갯길에서 땔감 나무 장만 중인 뒷집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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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뒷 목재 고갯길에서 땔감 나무 장만 중인 뒷집 아주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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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솔하우스 마당에 서 있는 솔농원 트랙터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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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솔하우스 마당에 서 있는 솔농원 트랙터 2008

이 녀석을 처음으로 몰고 가는골 용수형님 밭갈아 주면서 만남이 시작되었다. 밭도 갈았지만 주로 난 중형트랙터로 담배밭 만들기 작업을 했다. 바가지에 할머니 태우고 고란에서 집으로 왔던 추억이 되살아 난다. 할머니랑 외할머니가 계실 때가 그래도 좋았다.

쿠쿠~ 나에게는 대동공업 트랙터 교육장에서 발급한 트랙터 교육증이 있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몰라도 진주 가서 일주일 동안 트랙터 교육 받았던 시절도 있었다.^^ 참 아무생각 없이 그 때도 살았다. 결코 나에게는 득 되는 게 없었지만 솔농원을 위해서 가기 싫은 거 꾹 참고 갔다 왔다. 수 없이 그런 시간들이 반복되었지만 남아 있는 건 망각의 다리 저편에 있는 실종된 추억뿐이다. 그런 역사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도 말해주지도 않는다. 수많은 시간들이 그렇게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어머이가 말하면 거의 다 들어 주었다. 효자는 아니지만 어머니 말은 참 잘 들었다고 기억해 주기 바란다. 솔고개는 나에게 그런 곳이고 그런 가슴으로 솔농원 미래 비젼 프로젝트를 실천하다가 그만 두었다.

진짜루 코피 터지며 일했던 시간들이 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때 일하는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참 힘들었다. 그래도 의지와 끈기로 버텨내고 살았던 그 시절에는 그래도 염치가 살아 있었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 염치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는 시간들이 찾아 온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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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007년 고향마을 솔고개에 작은형이 건축한 솔하우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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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작은형이 애지중지 관리하던 싼타페는 아부지를 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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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2007년 고향마을 솔고개에 작은형이 건축한 솔하우스 전경

작은형의 영원한 쉼터 솔고개마을 사계절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