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 해당되는 글 43건

  1. 2007/02/14 아버지 그리고 농사꾼...
  2. 2007/01/25 어머님의 고사리 2006
  3. 2007/01/12 아버지의 쟁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2007년 2월의 어느 날... 아부지


아부지... 아버지... 아버님.... 夫... 부... 父... 그리고 농사꾼...

진^^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2006년 5월 9일 솔농원에서 어머이 고사리 말리기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농원 고사리 입니다. 솔농원 고사리에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노동과 정성 그리고 농심이 들어간 고사리 입니다. 고사리... 떨어진 낙엽위로 불쑥 솟아 오른 고사리를 발견하면 산삼 발견 한듯 가슴이 콩당콩당 거리며 설레입니다. 그 연초록의 고사리대에서 느껴지는 자연의 싱그러움은 산에서 고사리를 꺽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겠지요. 요즘 산에는 잡목이 많아서 들어서기도 힘들지만 고사리가 나는 산이나 들도 그렇게 많치 않습니다. 요즘 대부분의 육개장에 들어있는 고사리나, 시장에서 나오는 고사리는 중국산 입니다. 국산은 그 양도 문제지만 고사리 꺽어선 밥벌이가 안되기 때문이지요. 또 남에 산에 들어가서 함부로 꺽을 수 있는 봄나물도 아니랍니다. 사유지에선 고사리나 나물 뜯는 행위는 우선 주인의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산 나물도 그냥 나는 것 같지만 농부들이 정성을 다해 가꾸는 나물밭도 있기 때문 입니다. 솔농원 고사리는 잔등넘어에 있지요. 풀도 베고 잡초도 제거하고 지윤이 외할머니가 정성스럽게 관리하는 자연산 고사리 밭이 랍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월초에서 부터 솔농원 고사리를 췌취 합니다. 아침 일찍 나가서 혼자 작업하면 4시간 이상을 둘이하면 2시간 정도 해야 하루에 나오는 고사리를 뜯어와서 삶아서 말릴 수 있습니다. 사진은 고사리를 가마솥에 삶아서 싸리로 만든 발에 널어서 말리는 모습 입니다. 오월의 햇살을 받으며 청정 무공해 고사리이자 어머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솔농원표 고사리는 돈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솔농원에서 가지고 간 고사리는 그냥 얻었던 돈주고 삿던간에 알뜰히 먹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사리 꺽고 말리고 보관하는 일이 만만치 않은 노동력을 요하고 신경써야 하는 작업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큰 수술후 저렇게 일하면 왜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냥 지금까지 그랬던 것 처럼 참고 인내하며 일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솔농원표 고사리! 지윤이 외할머니의 자식 사랑의 마음이 가득 깃든 솔농원표 고사리는 맛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깃든 지윤이 외할머니의 농심이 더 소중한 추억의 맛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프로 농사꾼으로 사람을 맞이하는 정성과 배려는 솔농원 후손들과 솔농원을 찾아왔던 좋은친구들도 배웠으면 합니다. 올해도 앞재넘 잔등넘어에는 어김없이 5월의 신록에 이름없는 들꽃 속에 탐스러운 고사리가 솟아 오르겠지요. 그 고사리를 지윤이 지승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건강하고 즐겁게 꺽으며 작년에 그랬던 것 처럼 올해도 아들 딸들에게 한 두 근씩 안겨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소구리 하우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 솔농원 앞재 넘어 밭에서 아버님 쟁기질 하시는 모습

요즘은 사진처럼 쟁기로 밭을 가는 모습은 오지에 있는 농촌마을 아니면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사진속에 아버님도 20년전의 모습입니다. 오월의 뙤약볕에서 쟁기질 하시며 자식들 공부시키고 장가 보내고 그랬던 쟁기 입니다. 험한 돌밭에서 쟁기질을 할때 쟁기보습에서 불꽃이 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농사도 치열한 삶의 현장임을 생각 했던때가 엊그제 같은데 우리들의 고향마을에서 쟁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무거운 쟁기 보습을 땅속 깊이대고 밭을 가는데 엄청난 체력을 소비합니다. 밭고랑을 내고 비닐을 씌우고 담배를 모종하던 그 때는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정직한 노동으로 정직한 결과를 바라보며 살아오신 우리들의 농부 아버님들께 진심으로 존경과 감사의 가슴을 드립니다.

이랴~ 돌아라 이놈아! 워~워~ 신기하게도 아버님의 그 명령에 소는 잘 따랐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소가 명령을 따르는 것은 청각적인 이유보다는 소 코뚜레의 위력이 컷다는 사실을... 코뚜레에 메달린 소고삐를 적당하게 이용하며 소리치는 것은 힘든 쟁기질의 피곤함을 달래기 위한 아버님의 흥이였다는 것을... 그 모든 것은 이제 우리들의 추억이 되어 갑니다.

요즘 농촌 들녘은 거의 기계로 농사짓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소가 하던일은 거의 트랙터로 대체되었고 가을걷이의 풍경도 경북 영주시 이산면의 기계화영농현장 처럼 되었습니다. 소가 하던일을 트랙터가 하고, 농부가 하던일을 영농공장에서 컴퓨터로 관리하는 영농으로 서서히 아주 서서히 변해가고 있기도 합니다. 현재는 트랙터에 사람이 앉아서 조정을 하지만 앞으로 머언 미래에는 트랙터로봇이 그 모든 것을 할수 있는 시대가 그리 멀지는 않은것 같기도 합니다. 그 때는 정말로 쟁기질하는 모습은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이야기로 우리들의 후손들에게 전해지겠지요. 그때가 되면 소구리 하우스의 블로그에서 이글을 보던 사람들도 옛날... 옛날에의 주인공이 되어 있으리라 생각 됩니다. *__*

2007년 1월에 아버지의 쟁기를 추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