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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충북 단양 적성 기동리 곧은터 마을 성황당 앞 세레스 덤프

세레스 1톤 덤프 입니다. 세레스는 1987년쯤 기아자동차에서 농촌형 다목적 화물자동차로 개발한 1톤 화물차 입니다. 그 후 덤프도 나왔는데 농장에서 거름을 실어 나르거나 하는 용도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소규모 공사현장에서 많이들 애용 하는 것 같았습니다. 쿠~! 세레스 운전석에 호로 씌운 차를 운전해본 사람은 그리 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싸게 만든다고 호로 씌우는 걸로 운전석 지붕을 만들었는데 사용자들의 원성이 많아서 인지 금방 철판으로 만들었던 자동차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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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처음 나온 차가 솔농원에서 아직도 굴러가긴 하지만 차량 관리를 안 해서 몰골이 말이 아니랍니다.*__* 물론 1호 차도 철판으로 지붕을 만들어서 현재로선 호로 씌운 세레스(Ceres) 구경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1톤 세레스와 마찬가지로 덤프도 4륜구동형 화물 자동차 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4륜 구동이고 차체의 메카니 즘이 비교적 간단한 방식으로 되어 있어 잔 고장도 별로 없고, 눈길이나 험로 또는 밭두렁을 넘어가며 운송하는 자동차로는 정말 좋은 화물자동차가 세레스 입니다. 세레스는 분무와 험 지에서의 운송의 장점 때문에 현재도 건축이나 토목 공사장에 일하는 사람들이 많이들 타고 다니기도 합니다.

이 차로 담배와 비료 운송, 사람 운송도 하고, 학강산과 가는골 잔등 넘어 구데 밭 등 안 가본 밭이 없습니다. 뒷 바퀴 판 스프링이 일자로 펴질 정도로 배추 한 차 가득 싣고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배추 팔러 두 번 정도 성남으로 통하는 터널이 있는 00국도로 갔던 추억들이 모니터위로 오버랩 됩니다. 어휴~! 저 차를 몰고 그 당시 어떻게 가락동까지 갔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솔직히 피곤 했지만 그 때만해도 청춘의 에너지는 노동에 대하여 겁내거나 피하지는 않았던 시절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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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솔농원에 한대 있는 4톤 트럭은 세레스에 비하면 운전은 편했습니다. 그 차 몰고도 가락시장에 새벽에 한 번인가 올라 갔었던 것 같습니다. 참 솔농원 일이라면 사심 없이 일단 하면 과감하게 일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요즘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때 참 일하는 게 힘들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사일은 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랍니다. 의지죠. 8월의 태양열이 아무리 뜨겁고 후덥지근 해도 무엇인가 의지를 갖고 일하는 농심의 가슴 앞에서는 고개를 숙인 답니다.

농사( )...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 랍니다. 할거 없으면 농사나 짓는다고 말하는 사람들 진짜 그 말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랍니다.^^ 힘드니깐 모두 떠나서 농촌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 농사꾼이 살아가는 풍경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겠지요. 물론 건달 농사꾼들은 예외 입니다. 진짜 농촌에서 건달 농사꾼도 생각 보단 많이 있습니다. 농심의 가슴도 농사일을 대하는 가슴도 아닌 건달 농사꾼들... 어쩌면 그런 사람들이 말이 더 많은 지도 모르겠지요. 그래서 진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부의 소중함을 알기에 오늘도 대한민국 농부님들 감사 합니다. 화이팅! 이라고 소리 없는 응원이라도 많이 많이 보내고 있습니다.

사륜구동 1톤 화물자동차 세레스 홈^^ 으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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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솔농원 배추밭에서 신정 엄마^^  2006

솔농원은 매년 김장배추를 재배 합니다. 1984년인가 신정 맘^^이 문현이랑 아저씨랑 함께 솔농원을 방문 했을 때도 10월이라 터 밭에 배추가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때 배추밭에서 찍은 사진을 정말 많은 세월이 흐른 후 에도 추억의 영상으로 이야기 하신 답니다. 삼촌! 그 때 배추밭에서 찍은 사진 정말 좋다고... 그 때 저도 청춘이었고 신정 맘도 30대 주부 셨는데... 솔농원 배추밭에 앉아 있는 신정 맘^^을 세월은 1984년도의 사진위로 사르르 오버랩 되어 2006년 9월의 영상으로 아무도 모르게 변했습니다.

그 때 초등학교 4학년인 문현이는 대학 졸업하고 직장 다니다가 시집가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서 지금은 미국 동부에 있는 대학에 신랑이 유학 가서 미국에 살고 있기도 합니다. 그 때는 태어 나지도 않은 귀염둥이 신정이는 조기 유학 가서 정말 착하고 성실하게 공부해서 지금은 코넬대학교 에서 그림을 전공하고 있기도 합니다 신정이 녀석 요즘 진로에 대해 고민이 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참 그림을 잘 그리는데, 분명 예술적 재능은 있는데... 좀 컸다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드나 봅니다. 이런저런 소식은 가끔씩 주고 받지만 신정이랑도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기도 합니다. 그래도 꼬맹이 때 찍어준 비디오를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며 신정이랑 식구들이 보며 즐거워 한다는 소릴 들을 때는 작은 추억이나마 만들어 준 것 같아 기쁘기도 합니다.

사진 정리하다가 신정 엄마가 배추밭에 앉아있는 사진을 보고 잃어버린 청춘의 시간들이 떠올라 이러고 있답니다.^^ 참, 나름대로 꿈이 컸는데... 그 노무 휴머니즘이 나를 자유롭게 놔두지 않았다고 아쉽게 흘러간 시간을 잊으려 애쓰고 있는 나를 바라보면 때론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도 잃어버린 세월을 뒤로하고 배추밭에 앉아 계신 신정 맘^^의 소녀 같은 포즈와 미소가 즐겁습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진짜 돈 없을 때 10만원도 큰 돈 입니다. 그럴 때 마다 도움을 주신 분들 중에 한 분이 신정 맘 입니다. 휴~ 셋째 형도 그랬고, 매형도 그랬고, 옥이도 그랬고, 어머이와 아부지도 그랬고, 그랬습니다. 고마워용~ 신정맘^^!!!

하리 하우스에서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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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의 보고,
       인터넷 헌책방 새한서점"


인터넷 헌책방 새한서점은 1979년 문을 열어 25년 동안 운영되어온 오래된 서점으로서 각종 매스컴을 타기도 했고 영화(불후의명작/청춘만화)촬영 장소로 이용될 만큼 명물 중고서점이었습니다.

보유하고 있는 서적이 12만권에 이르고 있으며 매장은 부지면적이 11472평방미터(약 3470평), 건물면적이 1349평방미터(약 408평)입니다. 모든 종류의 책을 다 취급하지만 대학교재 전문서적 원서 논문 자료등을 많이 취급합니다.

2001년부터 온라인 판매(인터넷)를 시작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이용한 문화관광서점으로 거듭나기 위해 2002년 10월 서울고대 앞 매장을 닫고 충북 단양군
적성면에 소재한 적성초등학교로 옮겨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헌책방 새한서점은 독서문화와 관광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문화공간입니다. 독서인들이 일상 생활공간을 잠시 떠나 가족이나 친지들과 함께 쾌적한 주변 환경을 벗 삼아서 독서와 함께 여가를 편안히 즐길 수 있는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새한서점은 여러분들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새한서점이 들어선 적성초등학교는 1999년에 폐교가 되었고 2002년 가을부터 새한서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구)
적성초등학교는 학생이 가장 많았을 때는 800명에 이를 정도로 농촌에 있는 초등학교로서는 매우 커서 2층건물에 교실이 11개실에 이르고 관사를 포함한 부속건물이 여러 채이며 운동장 또한 매우 넓습니다.

현재 교실 1칸을 농촌활동을 하는 대학생들과 단체방문을 하는 손님들을 위해 개방을 하고 있고 급식실로 개조한 교실 한 칸을 손님들을 위한 주방시설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아름드리 플라타너스와 은행나무 그늘 아래에서 단체야영도 할 수가 있습니다.

인터네세 헌책방 새한서점 주변엔 등산을 할 수 있는 100대 명산중의 하나인 금수산(錦繡山)과 남한강과 충주호를 끼고도는 말목산이 있습니다. 금수산과 말목산과 남한강이 둘러싸고 있는 적성면 상리하리 일대는 마을 자체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면서도 자연과 마을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가을이면 온마을의 길가와 집집에 있는 감나무에 열린 감열매가 지천을 이룹니다. 또한 인근 저수지와 남한강에서는 낚시를 즐길 수가 있고 조금만 나가시면
단양팔경(丹陽八景)을 구경하실 수도 있습니다.
새한서점은 이런 시설과 환경을 단골 고객 여러분에게 모두 무료로 제공합니다. 관심이 있으신 손님들께서는 언제라도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헌책의 향기를 찾아서 홈으로 가기^^